스쳐 지나칠수도 있는 인연들이 동기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2월의 스케줄이 미리 정해져 있어 동기들의 설악산 계획에 합류 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갑자기 산에 가고 싶을땐 혼자서도 여러번 갔던 산길.. 설악의 겨울산행도 좋지만 동기들과 함께 할것을 생각하니 설악산으로 향하는 마음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도 가는법.. 선약을 깨고 중청에서 합류하기로 결정. 토요일 밤 동대문에서 11시 차를 타고 오색으로 향했다.
대청봉까지는 약 3시간정도...새벽 3시30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추울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바람은 포근했다. 전날 내린비로 얼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돌길로 이루어진 가파른 오르막길은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설악의 캄캄한 산길을 오른다. 동기들을 처음 만났을 때 를 떠올렸다. 첫인상이 마지막 인상이라고 했는데 우리 동기들에겐 틀린 이야기 같다. 만남의 횟수를 거듭할 수록 각자의 개성이 유별나고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1시간정도 올라가니 가느다란 눈발이 보이기 시작하고 잔설이 녹아 길은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눈과 서리꽃으로 하얀 웨딩드레스를 차려 입은 설악산은 수줍어서일까 진한 안개로 보일듯 말듯 바로 앞 길만 겨우 내어주고 있었다. 우리의 삶도 산길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젠을 착용했어도 미끄러운 길이 발목을 잡고 주춤거리게 했지만 동기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맘에 발걸음이 바빠진다.
고도가 높아 질 수록 점점 커지는 눈송이를 보니 구름속을 통과 하는 중.. 어둠속에 엷은 속치마를 입은듯 신비로운 모습으로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랜턴의 불빛에 비치는 하얀세상과 인기척도 느낄 수 없는 길.. 그 속을 홀로 가는 짜릿함은 가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드디어 대청봉에 도착.. 아름다운 설경에 질투가 났는지 바람의 심술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시끄럽게 악을 쓰며 불어대 몸의 중심을 잡을수가 없었고 심한 안개에 가려 중청산장의 불빛도 보이지를 않는다. 결국 바람을 이기지 못해 사진도 찍지 못하고 서둘러 동기들이 있는 중청산장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내려가는 중에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바람이 심해서 얼굴을 가린 상태라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도 없는 상황.. 카메라를 들고 비슷한 모습이 보이면 혹시 하고 '철화씨'불러 보지만 어김없이 다른사람.. 묻기를 포기하고 먼저 달려간 마음을 쫒아 발길을 재촉했다.
중청산장입구에 도착하니 재정씨의 모습이 보인다. 어찌나 반갑던지..말을 건네기 보다 툭 치는 것으로 반가운 마음을 대신하고 속이 안 좋다던 병우씨를 찾았다. 한참 후에야 모습을 보이는 병우씨.. 안색을 살피니 생각보단 괜찮은 것 같았다.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까칠해진 동기들의 모습을 대하니 덧칠하지 않은 인간미라고 할까..이기심을 모두 비워낸 듯한 맑은 모습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 되는 것은 대체 뭘까? 치장하지 않아도 마음의 소통을 이루고 함께 보낸 시간만큼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 반겨주고 작은 것까지 챙겨주는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뜨거워 진다. 남자들이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위스키 한잔을 마셨다. 아침부터 왠 술이냐고 하겠지만 그 시간이 내게는 아침이 아니라 산행중인 것이다. 목을 타고 뜨거운 것이 내려가는 짜릿한 느낌.. 주변을 돌아보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재정씨 집에서 가져온 시골 된장찌게로 맛있는 아침을 먹고 하산을 서둘렀다. 길이 좋으면 빨리 내려가겠지만 겨울산길은 예측을 할 수가 없기에 서둘러야만 했다. 눈이 적당히 쌓인길..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갔다. 짦은 산행에 몸이 덜 풀려 뜀박질도 해보고 경치 좋은 곳에서는 사진도 찍었다. 시리도록 맑은 옥색의 물빛이 내 가슴까지도 푸르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삐죽삐죽 하늘로 향해있는 삼각의 꼭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수를 셀수 없을 만큼 수없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침봉들... 아름다운 자연은 오랜시간 조화를 이루며 그렇게 함께 했을 것이다.
동명항에 가서 회를 먹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난장에 펼쳐진 횟거리들..어디가나 다를 것 없는 풍경이지만 바다가 보인다는 것은 우리들 마음을 들뜨게 했다. 고목을 닮은 택시기사의 안내로 맛있는 회도 먹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버스 시간을 기다리느라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그동안 숨은끼를 보이지 않던 우탁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것도 감미로운 노래로..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뒤풀이까지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차를 타면서 설악산행은 끝이 났다.
http://cafe.daum.net/miracle0218/POcF/45
생각보다 이른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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